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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인가? ‘국어’인가? 우리나라 학생들에겐 생각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2018-12-18

 

‘과학’인가? ‘국어’인가?

우리나라 학생들에겐 생각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올해 불수능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과목은 ‘국어’다. 한국교육과정 평가원은 EBS 연계 출제라고 밝혔지만, 수험생의 기대와 달랐던 부분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우리가 수능 국어에서 바라는 문제들은 대부분 문학, 대중교양서, 신문 기사 정도의 글을 읽고 글의 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답변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마치 원론 수업에 등장하는 개론서의 일부가 발췌된 듯한 지문과 과학 개념의 이해를 물어보는 문제가 등장했고, 흡사 이것이 과학 문제인지 착각하게 만들었다.

 

 

 

미래 사회의 인재가 갖춰야 할 조건에 따라 달라진 평가

 

과학 지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국어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출제 측과 수험생의 기대가 달랐다. 아마도 수학능력시험이 대학에서 공부할 자격을 평가하기 위한 것 이라면 앞으로 과학이 소재인 글에 대한 이해를 묻는 문항은 증가할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 추측하자면, 국어는 철학적 주제에 대한 서술형으로 진행되고, 이번에 논란이 되었던 과학 지식에 대한 서술문을 읽고 정답을 찾는 방식의 비중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우리가 앞으로 더 많이 알고 이해해야 하는 분야가 ‘기술과 과학 원리는 어떻게 사회에 투영되고, 변화시키는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과학, 기술 지식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외부의 변화를 이해하고, 지식으로 구성하며, 내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미래사회의 인재가 갖춰야 하는 조건이 됐다. 평가 역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그 형식을 달리하게 된 것이다.
 

 

 

상식적인 선에서의 과학적 사고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이번 수능의 국어 영역과 같이 서로의 기대가 어긋나는 상황이 일어나는 걸 방지하려면 몇 가지 추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교양으로서의 과학은 어느 수준까지 배워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법률로 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상식선으로 과학적 사고가 높아져야 한다는 뜻이다. 2018년 사망한 ‘스티븐 호킹’ 박사의 ‘시간의 역사’는 9백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고 영국에서 4년 이상 베스트셀러에 링크되었다. 이 책은 과학영재학교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책 중 하나인데, 그 수준이 문과생의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높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의 사회 수준이라면 그들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는지 엿볼 수 있을 정도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는 주로 성공, 위로, 평등 등의 사회 가치와 정의,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된 책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어떤 재화나 제품의 수요가 많다는 것은 그 재화나 제품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결핍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구(needs)가 생산에 의한 공급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방향성이 우리가 이야기 하는 유행, 혹은 경향 (trend)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 구성원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들이 성공, 위로, 평등 등의 문제이기에 관련된 수요가 더 많다고 추측할 수 있다.
 

 

 

현상에 대한 다양한 의미 찾고, 자신과의 연관성까지 살펴볼 수 있어야

 

앞으로 다가올 기술 사회에서 학생들이 당장의 삶의 고통이 아닌 더 크고 추상적인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만드는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학생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는 일이다. 그저 시키는 대로 외우거나, 평가의 순위를 높이기 위해서, 혹은 친구를 경쟁자로 삼아서 한 계단 오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은 왜 불어오는지, 슬플 때 왜 눈물이 나는지, 물은 왜 아래로 만 흐르는 지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과학∙철학∙사회적 의미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자신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습과 교육은 지금, 혹은 다음 세대, 어쩌면 그 다음 세대에서도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교육 변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습한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해 보고 표현하는 일로 귀결되어야 한다. 이런 교육 환경의 조성이야 말로 사회와 학부모의 역할인 셈이다.
매년 11월 둘째 주 목요일에 실시되는 수학능력시험은 전국의 모든 학생을 줄 세울 목적으로 실시된다. 변별력, 즉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힘이 커지면 수능은 불수능이라고 불린다. 전체 학생 중 4%의 학생만 맞출 수 있는 문제가 변별력의 핵심이 된다. 올해는 국어가 그 역할을 한 셈이다. 사회 환경과 별개로 입시에서 과학과 관련된 글을 이해하는 능력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언어를 매개로 하는 국어, 영어 모두 마찬가지다. 이는 독서 과정에서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올해 수능을 본 학생이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면 지문을 다 읽지 않아도 정답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억지로 익숙해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학을 이해하려면 관심과 호기심이 중요하고, 이 호기심과 관심은 즐거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학생이 즐거운 수업과 교실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