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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인문학적 소양과 인문학의 역할! 간접경험을 통한 인성 강화
2018-03-14

 

독서, 인문학적 소양과 인문학의 역할

간접 경험을 통한 인성 강화

 

 

기술 발달로 인해 사회 변화가 빨라질수록 사람들은 변화하지 않는 것들을 탐색한다. 속도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의 저항인 셈이다. 우리가 향수(Nostalgia)에 빠지는 것도 그 근원에는 변하지 않는 과거의 달콤씁쓸한(Bittersweet) 기억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도 어찌 보면 빠른 사회 변화에 대한 심리적 저항일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매일 변화하는 기술의 변화를 쫓아가는 피곤함보다는 이미 정해진 과거를 다시 따라가는 것이 내 마음에 안정감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인문학 열풍’이 서점가에서 미디어로 다신 개인에게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이렇듯 마음의 치료와 보살핌, 그리고 기술 사회 속에서 소외되는 자신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자취(人文)’ 혹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에 대한 사랑(Humanitas_ The Latin word humanitas corresponded to the Greek concepts of philanthrôpía _loving what makes us human)’은 그 어원과 달리 학문적인 ‘인문학’의 역할과는 조금 다르다. 과학에서 실증(empirical)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또 그 방법은 과학과 같이 수학으로 실증하지 않는 방식이 선택된다. 예컨대 인간과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 ‘시’와 ‘소설’로 그리고 ‘음악’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 경험과 직관으로 만들어진 위대한 질문들은 과학자들의 새로운 ‘영감’과 탐구 주제가 되고, 새로운 과학을 열어갈 수 있는 지평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인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절대 사회 변화와 환경을 격리한 채 과거의 지식만 향유해서는 곤란하다. 인문학의 핵심 방법론인 ‘온고지신(溫故知新)’해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를 답습하거나 지식을 쌓아두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의미를 유추하거나, 해석하여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거나 해결해야만 의미가 있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인문학에 대해서 단순히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는 심리적 안정감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시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왜 과거의 인문 서적들을 읽으라고 권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도서들이 사람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상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단순화하면 결국 ‘환경과 나’의 적응 문제가 된다. 내가 환경 변화에 적합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더 폭넓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내’가 될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청소년들에게 ‘나’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인문 서적들이 하는 역할은 매우 크다.

또 다른 의미로는 다양하고 다른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상황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간접 경험의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두 가지 요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우리의 뇌는 감각기관의 자극이 없이 순수하게 뇌에서만 인식한 자극이라도 실제 감각한 것과 같은 영역이 활성화되어 가상 감정과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쉽게 얘기하면, 고통받는 장면을 뛰어난 작가가 정말 뛰어나게 묘사할 경우 글만 읽었음에도 그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거나, 아주 짧은 시를 보고 슬퍼지더라도 슬픔이 작동하는 방식이 같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따라서 인간이 한정된 장소와 시간에서 살아가더라도 수많은 인생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먼저 살아간 인간들이 남겨놓은 유산을 보는 일이 된다. 두 번째 요소는 ‘카타르시스(catharsis)’에 대한 이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간접 경험하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동정하거나 연민을 느낀 후에 나로 돌아올 때-심리적 고통 이후에 겪는-내 자신의 생동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감정의 분출을 통한 마음의 정화는 흡사 우리가 격한 운동 후에 겪는 만족감과 생생함에 비견될 수 있다.

이런 감정 훈련들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그리고 인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인문학적 소양’의 기초인 셈이다. 인문학적 소양이란 쉬운 말로는 ‘사람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작게는 옆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편하게 해주는 능력이며, 크게는 새로운 기술과 인간의 정의와 존엄이 경합을 벌일 때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이다. 미래 사회에서 우리가 ‘인성’을 강조하고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비단 사회의 특정한 예절 교육을 위함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가 기술로 질주하고 있을 때, 그 방향을 결정하는 조타수가 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함인 것이다.

맹자는 ‘인(仁)’ 즉 ‘어질다’에 대해서 ‘측은지심(惻隱之心)_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어진 마음’은 아무리 흉악한 도둑이라도 어린 아이가 우물 속으로 떨어지는 찰나의 광경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안타까움, 불쌍함과 같다고 말한다. 인간적인 것, 인성이란 그것이 유전자에 새겨진 사실이 아니더라도, 남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세다. 차가운 기술에 더없이 필요한 따뜻한 마음이자, 미래 사회의 주인들에게 꼭 필요한 마음이다.